
한동안 그래도 큰 저항없이 작동하던 루틴이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적당히 소화가 되면, 나는 으레 아파트 헬스장으로 갔다. 트레드밀에 올라 일정한 속도로 40~50분을 채우는 것이 좋았는데, 요즘 내 러닝화는 현관 한 쪽에 그냥 찌그러져 있었다.
습관이 무너지는 데는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었다. ‘게을러서’라는 한 단어로 퉁치기엔, 그 과정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채로운(?) 핑곗거리들이 가득했다. 나의 첫 번째 브레이크는 '긴 연휴'였다.
1. 시스템의 완전한 리셋: 연휴와 출장의 후폭풍
처음 날라온 핑계는 10월 3일부터 12일에 달하는 이번 연휴였다.
'뭐 연휴 마치고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면 되지..'
습관이란 일상의 톱니바퀴에 정확히 맞물려 돌아갈 때 가장 강력하다. 나의 경우 '저녁 식사 → 휴식 → 헬스장'이라는 자동화된 시스템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긴 연휴는 이 시스템을 강제로 '초기화'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한 주를 쉬고, 그 다음 2주는 개인적인 일로 저녁 여유시간이 통채로 사라지는 바람에(?) 또 쉬고 나니 그 사이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는데, 또 정말 새로운 사소한 핑곗거리가 나타났다.
2. ‘최적의 조건’을 향한 집착(?)이 만든 두 번째 틈
나는 저녁에 아파트 헬스장 트레드밀을 이용한다. 여름과 가을, 헬스장은 늘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밖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것은 그나마의 위안이었다.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한 어느 날 저녁, 헬스장으로 향하려다 문득 멈칫했다. '지금쯤이면 창문을 닫았으려나?'
이 질문 하나가 발걸음을 더 멈춰세웠다. 혹시 너무 추워졌다면? 운동복을 긴팔 긴바지로 입고 가야 하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지? 반대로 또 혹시 그 정도 온도까지는 아니라면? 아니면 만약에 창문을 닫고 난방을 시작했다면? 답답한 공기 속에서 여러 사람이 뿜어내는 열기와 이산화탄소를 마시며 달려야 한다. 혹시 누군가 기침이라도 하면 그 바이러스는…?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사실 다 핑계지만.
물론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확실하지 않은, 어쩌면 불쾌할지 모르는 환경'에서 운동하고 싶지 않다는 합리적인 핑계를 만들어냈다. "오늘은 일단 좀 쉬자."
이것은 게으름과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완벽한(??) 조건에서만 움직이려는, 어설픈 통제 욕구에 가까웠다. 그깟 창문이 열렸든 닫혔든, 일단 가면 5분 안에 적응해서 뛰고 있을 게 뻔한데도, '시작' 자체에 대한 진입장벽을 사소한 불확실성이 몇 배나 높여버린 것이다.
이제 저녁시간 달리기는 더 이상 자동으로 굴러가는 루틴이 아니게 되어 있었다. '넷플릭스 보기', '밀린 업무 집에서도 붙잡고 있기', '그냥 소파에 누워 있기'와 같은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로 전락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면 당연히 뇌는 가장 쉬운 길, 즉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한다. 여기에 앞서 만들어둔 '창문이 닫혀있을지도 몰라'라는 사소하디 사소한 핑계가 훌륭한 방어막이 되어준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굳이 답답한 곳에 가서 뛸 필요는 없지."
하루를 미루면 다음 날은 더 가기 어렵다. 리듬이 완전히 깨진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는 행위는, 굴러가던 바퀴에 다시 오르는 것이 아니라 멈춰있는 쇳덩이를 처음부터 미는 일에 가깝다.
3. 다시, 첫걸음의 마찰력을 줄이는 일
그렇게 어느새 5주가 흘렀다.... 응..? 벌써 그렇게 됐나??
... 그렇게 됐더라. 무려 5주가 흘렀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합리적인 이유로 쉬고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변호해왔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 나는 지금 달리지 않고 있다. 핑계야 많지.. 바쁘고 귀찮고 춥고 아프고... 많지.. 어쨌든 그랬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정교한 자기 합리화의 과정을 복기하고, 나와 비슷한 함정에 빠진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다.
습관이 끊어지는 건 너무나 쉽고 자연스럽다. 중요한 건 '왜 끊어졌는가'를 냉정하게 분석하되, 거기에 매몰되어 자책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40분을 채우겠다는 거창한 목표는 일단 버린다. 그 목표가 또 다른 진입 장벽이 될 뿐이다.
오늘의 목표는 딱 하나다. "헬스장에 가서 트레드밀 위에 10분만 서 있다 오기."
아마 10분을 서 있으면 5분은 걷게 될 것이고, 5분을 걷다 보면 5분은 뛰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창문이 닫혀있으면? 그냥 "생각보다 괜찮네" 혹은 "역시 답답하군" 중얼거리고 내려오면 그만이다.
습관은 완벽함이 아니라 지속성으로 완성된다. 중요한 건 멈췄다는 사실이 아니라, 멈춘 자리에서 다시 발을 내디딜 수 있느냐의 문제일 테니까. 자, 이제 그만 분석하고 러닝화를 챙겨야겠다.
다녀왔다! 20분.. 역시 오랜만에 해보니 또 원래 말썽이던 왼쪽 무릎이 욱씬거린다만..
그래도 시작 한게 어디냐.
아 그리고, 가보니 헬스장 창문은 닫혀 있었고, 공기는 좀 차가웠고,
그래도 실내라 반팔 반바지든 긴바지든 적당한거 입고 가서 뛰면 될 것 같더라.
드디어 다행히도... 다시 또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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